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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센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신념이 강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요즘 벌어지는 서울인권헌장을 둘러싼 많은 일들을 보며 다시금 드는 생각이다.
끝내는 서울시장은 남들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동성애자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고 말았다. 시민위원회를 구성하고, 충분한 논의를 거쳐 나온 시민들의 인권헌장이, 그야말로 종잇조각이 되어버린 것이다.
작년인가 올해 초 언제인지 기억은 나지도 않지만, 서울학생인권조례를 수정하려는 문용린 당시 교육감의 시도로 공청회가 열렸었다. 나도 그 자리에 갔었고, 아수나로 등등 몇몇 청소년 인권 단체, 성소수자 관련 단체에서도 공청회에 참여했다. 아주 개판이고 불편한 자리였다. 교수라는 사람이 나타나 애국가를 제창하지 않는다며 설쳐댔고, 끝내 그 교수라는 사람과 주변에 있던 그들의 지지자들의 요구로 애국가를 제창했지만, 그들은 일어나지 않고 부르지 않는 사람들을 비국민 취급하며 사진을 무단으로 찍어갔다.
여기까지였으면 퍽이나 다행이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북한의 동포를 사랑하고 피부가 빨갛고 사람 목숨을 파리목숨으로 아는 빨갱이를 죽어라 싫어하는 그들은 동성애 청정국을 만들기 위해 그 날도 투쟁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공청회 진행 중 "인권조례에 대한 서울시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우리는 단상을 내려온다"고 말한 학생조사단 대표에게 야유를 퍼붓고, 그날 학생인권조례의 편에 서서 토론을 벌인 이들을 의사진행을 무시하고 야유와 욕설을 퍼부었다. 동성애의 확산을 막아야하며,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좋다고 박수를 쳤다.
끄트머리에는 "종북"을 운운하며 교사와 함께 온 학생 몇명이 학생인권조례에 반대한다는 말들을 했고, 대체로 학생인권조례를 옹호하는 성소수자와 인권단체 사람들의 발언은 전부 막혔다. 결국은 이 쪽에 앉은 사람들에게 저 멀리 애국하시는 분들이 언성을 높이고 의사진행을 방해하다 경찰이 와서 사태를 진정하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요즘에 벌어지고 있는 일도 비슷한 것 같다. 서로 다르지만 함께 살아가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다르다면 그것은 있어서는 안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안타깝게도 세상에는 아직도 많은 것 같다. 기독교인이건, 기독교인이 아니건, 정치적 성향이 우파건 좌파건 그렇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현실적인 힘을, 칼자루를 쥐고 있는, 그리고 더 강한 칼자루를 원하는 "인권변호사" 출신의 그는 굴복하고 말았다. 동성애자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서울인권헌장은 폐기하겠다고.
나는 그래서 항상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현실적인 힘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 자신만의 너무나 강한, 광신이라고 누군가 손가락질 할 만한 "의지"를 가진 이들은, 남과 함께 가는 것을 너무나 쉽게 포기하기 때문에, 나는 힘 센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아니, 애초에 나 자신이 너무나 나약해서 다른 사람이 없으면 길을 가기 힘든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