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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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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シム 2021. 5. 12. 19:07

1961년 10월 17일, 파리에서 학살이 일어났다. 알제리 전쟁 막바지, 드 골이 이끄는 파시스트 프랑스 정부가 “북아프리카 출신 프랑스 시민”에 대해 차별적인 야간 통금을 선언하자, 대다수 알제리인으로 구성된 1만명의 시민이 평화적 시위를 벌였다. 프랑스 군경은 총칼로 응답했고 학살이 벌어졌다.그 때 시위대가 얼마나 죽었는지 조차 파악이 안 된다. 프랑스 군경은 무차별로 발포를 했고 도망가다 붙잡히거나 의식을 잃은 알제리인을 세느강에 던져버렸다. 당시 프랑스 언론은 ‘프랑스인이 9명이나 죽었다’고 보도했다.

한국 언론이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이스라엘에 의한 학살을 ‘강대강 충돌’이라고 포장한다. 웃기는 소리다. 일상적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극우들의 폭력에 직면하고 있으며 어제 뿐만 아니라 지난 수십년에 걸친 인티파다에서 고향 땅을 찾고자 했을 뿐인 이들이 계속 희생되었다. 한국 사회가 제국주의를 바라보는 시선은 항상 한참 부족하다고 생각해왔다. 조선 민족을 피지배 민족 이었다고 쉬이 떠드는건 누구나 하는 일이지만, 그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그 사실이 어떻게 은폐되고 있는지, 한국 사회에서 다시 어떻게 변주 되었는지 알아볼 생각은 누구도 안 한다.

여담으로 앞서 말한 파리 학살의 원흉이자 숱한 식민지인 탄압을 주도했던 주요인사 중 하나인 모리스 파퐁은 훗날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협력이 들통나 드 골에게 받은 레지옹 도뇌르 착용을 금지 당하고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뒤 87세라는 나이에 수감되었다. 파퐁의 나치 협력은 추악한 행위로 인식 되었지만, 알제리 학살에 대해서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다. 여전히 1961년 10월 17일에 대한 기억 투쟁은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서구 주류 정치의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시선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우려된다. 한국 사회는 36년에 걸친 피식민 경험을 여전히 자주 언급한다. 그 역사를 한국 사회는 제도 교육 안에서, 사회 전반의 분위기에서 배운다. 우리는 이 문제에서 어디에 서야 할까.

————————————
밑의 글들을 참조하시면 좋습니다.

1) 사회변혁노동자당에서 정리한 1961년 10월 17일에 대한 기사. http://rp.jinbo.net/change/20374

2) 브런치에 올라온 프랑스의 알제리에 대한 만행이 잘 정리된 기사. https://brunch.co.kr/@namoosanchek/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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