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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지막이 되었다. 항상 '올 해 성실히 살았는가'라는 의문보다는 내년은 어떻게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려는지 불안만 더해간다. 누군가 올해는 '바닥 밑에 또 다른 바닥이 있고, 지금 우리가 바닥이라고 느끼는 이 곳이 바닥이 아니'라고 말했다. 틀림 없는 말이다. 다시금 희망보다는 절망을 더 많이 느끼는 해 였던 것이다.
올해 대학에 들어왔다. 오늘날에 와서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지식인이 된다는 것 보다는, 앞으로는 대학 입시가 아닌 밥벌이 걱정을 할 시기가 다가오는 것, 자신의 현실을 깨닫고 희망하는 직종을 변경하는 때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대학에 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얼마 지내보니, 여전히 현실은 모든 잿빛과 슬픔과 야유를 안고 살아가는 것 같았다. "할 수 있는 것"에도 여전히 한계는 존재했고, 마셔대는 술의 양만 늘었다. 배우는 즐거움을 가장 크게 느꼈던 토론 할 때 조차 상대에게 기대했던 것 이하의 발언을 들으면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던 적도 있다.
토론 얘기를 하자면, 더욱 더 실망스러웠던 부분은 2학기 들어 들었던 어느 토론 수업이었다. 주로 근현대사 관련 책을 읽고 그 내용이나 시대적 배경 등을 두고 토론을 하는 수업이었다. 10여명이 들어오는 수업이었는데, 반 정도는 책을 열심히 읽어왔음은 물론 토론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나머지 반은 토론을 하는 시간보다는 핸드폰 화면을 보는 시간이 더 길었다. 몇 명은 책을 읽어오지도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화가 난 교수는 몇번 씩 정중하게 책을 읽어올 것을 그들에게 당부했다.
그리고 사건이 벌어졌다. 그 나머지 반 마저 거의 집중력과 흥미를 잃어가던 와중, 종강 수업이던 어제 강의실에 들어오니 아무도 없었고, 교수가 들어와서는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이렇게 저렇게 한 두명 씩 연락을 해나가던 중, 넌지시 교수가 물었다. 모두들 흥미를 잃은 것 같던데 어떻게 생각하나, 하고 말이다. 주제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점, 대충 때울 수 있는 대강당에서의 강의를 듣지 못해서 마지못해 선택해서 온 경우의 수, 토론 문화를 거의 배우지 못한 점을 들었다.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과제를 내는 것이 평가에 좋겠다, 하고 말하고는 일어나서 나가버렸다. 그 후에 그 연락을 받은 이 중 한 명이 들어왔지만, 이미 교수는 나가고 없다는 설명을 듣고는 역시 당황해하며 나갔다.
누구든지 한국 사회의 실패요소로서, 꼭 드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토론의 부재다. 아주 심각한 문제다. 적어도 90년대 초・중반 즈음에 태어나 이제 20대 초・중반이 된 이들 중 9년에서 12년의 교육과정을 겪은 이들이라면 거의 토론에 대해서 배울 기회가 적었다. 배웠더라도 경진대회, 즉 경쟁을 위한 딱딱한 의견교환과 정형화된 양식만을 배웠을 것이다. 결국 자신의 의견이 담긴 진솔한 토론, 의견교환은 그들에게 거부된 것이었고, 경직된 지식을 배우는 입시 경쟁의 시기를 지나 갑작스럽게 학문의 길을 걷도록 강요받기도 한다. 아니, 이제는 인문학 보다는 이과, 이과보다는 공대 계열로 다들 진학하려나.
지인이 '서울대생이 시스템을 가장 잘 수용하고 내면화한 엘리트인데 (그런 사실에) 놀라는게 더 이상하다'고 말했다. "엘리트"들이 모인다는 대학에서도 시작부터 끝까지 제한된 지식, 경직된 지식으로 점수 경쟁이 벌어진다. 그리고 창의성이 없는 엘리트들이 사회로 나와 다시 지금의 토론이 상실된 시스템을 확고히 한다. "인문학의 종말"은 여기서 탄생한다. 한국 사회에 사는 이들이 자기만 아는 "천박한" 이들로 여겨진다면, 그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토론을 수용하지 않는 사회는 평등과 새로운 시도를 할 기회를 잃었고, 토론 하지 못한 개인은 자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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