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오늘 우리는 이미 법적으로 어떠한 문제도 없으며, 제한적이지만 전봉준 투쟁단이 서울 시내로 트랙터를 들여올 수 있는 판결이 나왔음에도 이를 저지한 경찰의 폭거를 봤다. 이는 집회 시위의 자유에 앞서 이동권의 자유를 침해한 큰 사건이다. 이런 불법적인 요소를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계 역시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이 사건과 마찬가지로, 집회에 나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폭력이 발생한 것을 오늘 우리는 봤다. '시국가요'를 발표한 모 가수 그룹의 공연이 과거 발언이 문제가 되어 취소 되었고, 이를 반발하며 공동행동 게시물의 댓글에 각종 여성혐오적 발언이 실리고 있다.
폭력과 비폭력의 기준은 모호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항상 폭력과 비폭력이 혼재되어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날에는 전쟁 현장의 장면이 생생하게 생중계를 통해 안방까지 들어오는 시대가 되었지 않은가. 그런 비극에 대하여 사람들은 쉽게 회피하는 방법을 익혀냈고 이것이 새로운 비극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는 '비폭력'의 역사는 결코 그들이 말하는 "평화시위"로서 끝나지 않았다. 직접적인 행동이 있었다. 1960년대 공민권 운동에 참여했던 이들은 충돌을 두려워 해 물러나는 것 대신 시트 인, 폭력진압에도 불구하고 자리에 앉아 견뎌내는 불복종 운동의 전략을 택했다. 초기에 폭력투쟁을 무릅쓰던 블랙팬서당(흑표당) 역시 70년대 들어선 후, 그리고 해체하기 까지는 여성, 성소수자 등 다양한 소수자 계층과 함께 커뮤니티를 구성해가는 전략을 택했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11월의 광장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 비폭력이라는 조용한 "평화" 속에서 혐오발언과 직접적인 위협과 인터넷 상의 간접적인 폭력으로 광장은 이미 와해되고 있다.
많은 이들은 이런 현상을 두려워 하며 여성혐오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심지어는 "국정원이 운영하는 단체다"라는 데마고기 까지 사용해가며 무마시키려 든다. 성소수자의 무지개 깃발을 보며 "이런데는 왜 나오냐"며 비아냥 거린다.
파시즘과 나치즘의 근간은 "침묵하는 다수"였다고 많이들 말한다. 나는 전체주의적 폭력이 이번 광장을 계기로 다시 드러나려고 고개를 드는 것은 아닌가 우려하게 된다. "평등한 연대"는 그래서 필요하다.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으기 위해서는 가장 낮은 사람들의 시선에서 생각해야 한다. 폭력이 어디에서나 혼재할 수 있음을 인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침묵은 평화가 아니며,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비폭력이 아니다. 11월 서울, 부산, 광주, 대구, 그리고 전국 어디에서나 펼쳐진 광장은 더 많은 의미를 담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존중해야 한다.
- Total
- Today
- Yesterday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