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이라는 세월은 짧지 않다. 속된 말로 강산이 두번 변한다. 나는 그 기간을 조금 넘게 살아 오면서, 내가 태어나서 피해갈 수 없었던 집단에서 -예를 들면 학교에 가면 있는 남자들의 무리- 둥근 사람이 되기 위해 내 양심을 하나 하나 잘라냈었다.
'여성을 차별하거나 성적인 눈으로 봐서는 안 된다', '소수자를 모욕하거나 비하 해서는 안 된다'. 이런 내 양심 속의 조각 하나 하나를, 세상에(적게 잡아도 속할 수 밖에 없는 집단에) 맞지 않는 조각이기에 뽑아내거나 다듬어야만 했다.
그렇게 해야만 할까? 아무렇지도 않게 둥글게 산다고 해도, 그걸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하는걸까. 거리에 나가 끌려가면서도 외쳐대는 그런 형태의 저항의 목소리를 포기했다고 하더라도, 나는 누군가에게 생각의 여지를 남기는 말을 한 마디라도 던지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오늘 이 얘기를 가족에게 하면서 펑펑 울었다. 내가 하나하나 포기하면 무디고 무딘 사람이 될까봐, 그게 두렵다고. 답을 내리지 못 한채 이제 자리에 누웠다. 잠이 빨리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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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강남역에서 여성이 끔찍한 혐오에 희생된 후에야 쏟아지는 수 많은 증언들을 듣고, 내가 생물학적 남성으로 얼마나 그 자체가 보호막이나 다름 없는 것 이었는지 느낍니다. 이 특권이나 다름없는 것이 내가 부정해도 붙어버리는 것이라는 사실에 큰 죄책감을 느낍니다. 여성이라서 죽어야 하는 세상은 잘못되었습니다.
저는 남성이기에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전 너무 무책임하게 살았습니다.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