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이라는 세월은 짧지 않다. 속된 말로 강산이 두번 변한다. 나는 그 기간을 조금 넘게 살아 오면서, 내가 태어나서 피해갈 수 없었던 집단에서 -예를 들면 학교에 가면 있는 남자들의 무리- 둥근 사람이 되기 위해 내 양심을 하나 하나 잘라냈었다. '여성을 차별하거나 성적인 눈으로 봐서는 안 된다', '소수자를 모욕하거나 비하 해서는 안 된다'. 이런 내 양심 속의 조각 하나 하나를, 세상에(적게 잡아도 속할 수 밖에 없는 집단에) 맞지 않는 조각이기에 뽑아내거나 다듬어야만 했다. 그렇게 해야만 할까? 아무렇지도 않게 둥글게 산다고 해도, 그걸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하는걸까. 거리에 나가 끌려가면서도 외쳐대는 그런 형태의 저항의 목소리를 포기했다고 하더라도, 나는 누군..
1. 귀찮아 하는 성질은 하나의 질병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학이 겨울잠을 자는 이 시기, 마지막으로 대학에 발 딛은 날 이후로 집 밖으로 발을 내딛은 날이 손에 꼽을 정도다. 그간 한 것이라고는 아침 느즈막이 일어나, 밥을 두 끼 정도 해 먹으며, 설거지를 하고, 술이 있다면 홀짝거리다 잠 드는 것이다. 기타를 튕기며 좋은 곡을 짓기위해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만 좋을 수도 있지만) 멜로디의 벽돌을 조금씩 굽고, 책장을 한 장씩 베어가며 생각의 집을 키워나간다. 이게 과연 효과적인 작업일지는 모르겠으나. 2. 점점 인간관계에 대한 압박을 느끼고 있다. 나가지 않는 것은 찾는 이도 없지만 찾을 이가 별로 없는 것도 있다. 그럼에도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풀어나가는 방식, 그 동안 무의식 속에 남을 의..
한 해의 마지막이 되었다. 항상 '올 해 성실히 살았는가'라는 의문보다는 내년은 어떻게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려는지 불안만 더해간다. 누군가 올해는 '바닥 밑에 또 다른 바닥이 있고, 지금 우리가 바닥이라고 느끼는 이 곳이 바닥이 아니'라고 말했다. 틀림 없는 말이다. 다시금 희망보다는 절망을 더 많이 느끼는 해 였던 것이다. 올해 대학에 들어왔다. 오늘날에 와서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지식인이 된다는 것 보다는, 앞으로는 대학 입시가 아닌 밥벌이 걱정을 할 시기가 다가오는 것, 자신의 현실을 깨닫고 희망하는 직종을 변경하는 때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대학에 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얼마 지내보니, 여전히 현실은 모든 잿빛과 슬픔과 야유를 안고 살아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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